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는 간·이·역
|
PM 12:00 기차를 타다
13일 낮 강릉행 무궁화 6호 열차. 책 한 권만 손에 달랑 들고 탔다. 평일 낮 승객이라고 해야 일본인 관광객 네 명뿐. 서울을 벗어나자 오른쪽도, 왼쪽도 황금논밭이다. 덕소역을 지나고 갑자기 기차가 속도를 늦추더니 결국 논 한가운데 섰다.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마주 오는 열차를 비켜가기 위해 잠시 기다리겠습니다.” 다시 속도를 낸 기차는 양평까지 남한강을 끼고 달린다. 녹색 강·푸른 하늘·노랗게 익어가는 벼의 삼색(三色) 잔치. 양평역을 벗어나면서부터 기차는 산길로 접어든다. 객차안도 호젓한 산길도 조용하기만 하다. 들리는 건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뿐이다.
● 청량리→구둔 무궁화열차 출발시간(도착): 6시50분(8시28분) 12시(13시26분) 16시15분(17시52분) 19시(20분37분) 4회, 요금 어른 4200원 어린이 2100원 노인 2900원
PM 1:26 간이역에 내리다
경기도 양평군 지제면 일신리 구둔역(九屯驛). 열차가 떠난 승강장에 여행가방을 짊어진 할아버지와 나만 남았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승강장은 가을 햇살과 역무원들의 잡담으로 가득 찼다. 승강장엔 의자도 없다.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할머니는 키 큰 은행나무 아래 그냥 앉았다. 승강장 왼쪽으로 아담하게 들어앉은 갈색 지붕의 역사(驛舍), 그 앞에 물이 퐁퐁 솟아오르는 연못과 꽈리·목화·금잔화가 심어진 조그만 화단까지, 딱 작고 아기자기한 시골간이역이다.
|
PM 2:25 시내버스를 타다
역 앞에서 여주행 마을 버스를 타고 황금논길을 10분 정도 달려 ‘못저리’ 마을에 도착했다. 10분 정도 걸어 들어갔나. 왼편으로 키 큰 솔밭이 보인다. 봄이면 아이들이 소풍 오고, 여름이면 어른들이 모여 더위를 식히는 일신리 사람들의 쉼터다. 빽빽한 솔 밭 한 켠의 느티나무, 밤나무에도 가을이 들고 있다. 벤치에 앉아 가을 논밭을 감상 하면서 도시락을 먹기 좋다. 솔밭 그늘이 시원하고 화장실, 식수대도 있으니까.
● 구둔역→못저리 마을버스(031-884-9286) 출발시간: 9시25분 12시30분 14시25분 17시20분 19시20분(5회), 요금 어른 850원 중고생 650원
PM 5:17 돌아가다
역사 지붕위로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처마에도 불이 켜졌다. 멀리서 들리는 기적소리. 마지막 청량리행 열차다. 부모님 밭일 도우러 왔던 아저씨와 퇴근하는 역무원이 올라탔다. 구둔역을 벗어나는 열차는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천천히 멀어진다. 선로가 곡선으로 휘어져 빨리 달리면 열차가 선로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 곡선 선로를 달리며 보는 느릿한 풍경은 여유롭고 아름답다. 하지만 2010년이면 구둔역 앞 선로는 사라진다. 덕소-원주 구간 중앙선 복선화 작업으로 구불구불 곡선들은 직선으로 쫙 펴지고 구둔역은 그 직선 위 어디쯤 다시 생길 것이다. 지금의 구둔역은 이제 하루 네 번 만나던 기차도 보기 힘들겠다. 기차도 찾지 않는 역이, 그렇게 혼자 남겠다.
● 구둔→청량리 무궁화호 출발시간(도착): 5시52분(7시37분) 7시21분(9시12분) 12시28분(13시50분) 17시17분(19시12분) 4회
|
'여행지 안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가까운곳에 있는단풍들 (0) | 2006.10.28 |
|---|---|
| 햅쌀 수확 미꾸라지 잡기 (0) | 2006.10.24 |
| 하늘공원 억새밭은 이 가을 무언가를 고백하기 가장 좋은 장소다. (1) | 2006.10.17 |
| 인천지역 해넘이 명소 10선 (0) | 2006.09.22 |
| 풍기에서 부석사까지 사과길 드라이브 (0) | 2006.09.21 |

